대공황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0 조회

1929년 10월,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된 주가 폭락은 인류가 경험한 가장 파괴적인 경제 위기의 서막이었다.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은 단순한 주식 시장 붕괴가 아니었다. 미국 경제를 반토막 냈고, 유럽을 흔들었으며,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 중 하나가 됐다.

1920년대: 호황 뒤의 거품

대공황을 이해하려면 그 직전 시대를 먼저 봐야 한다. 1920년대 미국은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불릴 만큼 경제가 호황이었다. 자동차, 라디오, 전기기기 같은 새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주식 시장도 연일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문제는 이 호황이 상당 부분 빚으로 쌓아올린 거품이었다는 점이다. 많은 미국인이 신용으로 주식을 샀다. 10달러짜리 주식을 사면서 1달러만 내고 9달러는 빌리는 방식이었다. 주가가 오르는 동안은 괜찮았지만,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연쇄 폭락이 일어날 구조였다.

검은 목요일: 공황의 방아쇠

1929년 10월 24일, 역사는 이날을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라고 부른다. 뉴욕 증권거래소가 개장과 동시에 11%가 폭락했다. 사흘 뒤 10월 28일 '검은 월요일'에는 추가로 12% 더 떨어졌다.

공황 이전부터 징조는 있었다. 1929년 9월 중순부터 주가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조정이겠지"라고 봤다. 처음엔 저도 헷갈렸는데요, 역사를 돌아보면 거품이 한창일 때 스스로를 거품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주가 폭락이 대공황이 된 이유

주가가 폭락한다고 반드시 대공황이 되는 건 아니다. 1987년 미국 주가가 하루에 22% 넘게 폭락한 '블랙 먼데이'가 있었지만 대공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1929년이 달랐던 건 몇 가지 악재가 동시에 터졌기 때문이다.

첫째, 은행 연쇄 도산. 주가 폭락으로 손실을 입은 사람들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뱅크런). 당시 은행들은 대출금을 주식에 투자한 경우가 많아 연쇄 파산이 일어났다. 1930~1933년 사이에 미국 은행의 약 40%가 문을 닫았다.

둘째, 금본위제의 함정. 당시 금본위제 아래서 정부는 통화량을 함부로 늘릴 수 없었다.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는데도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지 못했다. 오히려 금 보유량을 지키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펼쳐 상황을 악화시켰다.

셋째, 스물도 보호무역주의. 1930년 미국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통과시켜 수입품에 고관세를 부과했다. 보복으로 다른 나라들도 관세를 올리면서 국제 무역이 급감했다. 1929~1932년 세계 무역 규모는 65%나 줄었다.

연도미국 실업률GDP 변화
19293.2%기준
19308.7%-8.5%
193115.9%-6.4%
193223.6%-13.0%
193324.9%-1.3% (바닥)

세계를 덮친 파장

대공황이 미국만의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미국발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진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유럽 여러 나라에 막대한 돈을 빌려줬다. 특히 독일이 1차 세계대전 배상금을 갚는 데 미국 자금이 들어가 있었다. 미국에서 자금이 빠져나오자 독일 경제가 흔들렸고, 1932년에는 독일 노동자의 42%가 실업자가 됐다. 이 경제적 절망이 히틀러와 나치의 부상으로 이어졌다는 것, 역사의 아이러니다.

뉴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다

1933년 취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전례 없는 정책을 펼쳤다. 이른바 **뉴딜(New Deal)**이었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고, 댐과 도로를 짓고, 실업급여를 지급했다.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설립해 금융 시장을 규제하고, 예금보험제도를 도입해 은행 파산 시 개인 예금을 보호했다. 전통적인 자유방임 경제학에서 보면 이단적인 정책들이었다.

뉴딜의 효과에 대해서는 지금도 경제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다. 일부는 뉴딜이 대공황을 끝냈다고 보고, 일부는 실질적인 회복은 2차 세계대전 군비 지출이 이끌었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확실한 건, 뉴딜 이후 "정부가 경제에 개입하는 것은 나쁘다"는 고전적 자유방임주의는 다시는 이전의 위세를 회복하지 못했다.

대공황이 남긴 교훈

이게 개인적으로는 꽤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대공황은 경제학을 바꿔놓았다. 케인스 경제학이 부상했고,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정리하면, 2008년 금융위기 때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즉각적으로 개입하고 돈을 풀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1929년의 실수, 즉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의 교훈을 따른 것이었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경력 초기부터 대공황 연구에 매진했던 학자였다.

대공황은 역사책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예금자 보호, 실업급여, 금융 규제, 중앙은행의 경기 안정화 기능 — 이 모든 것이 1929년의 참사를 겪고 나서야 만들어진 것들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대공황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났나요?

A. 1929년 10월 주가 대폭락으로 시작됐다. 미국에서 가장 심각한 시기는 1929~1933년이었고, 완전한 경제 회복은 1940년대 2차 세계대전 중 군비 지출이 본격화되면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Q. 대공황 당시 실업률은 얼마나 됐나요?

A. 미국에서 1933년 실업률이 약 24.9%로 정점을 찍었다. 이는 4명 중 1명이 일자리가 없었다는 의미다. 독일은 1932년 노동자의 42%가 실업 상태였다.

Q.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끝낸 건가요?

A. 뉴딜은 경제 상황을 개선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기여했지만, 완전한 경기 회복은 2차 세계대전 중 군비 지출이 가져왔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뉴딜의 효과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된다.

Q. 2008년 금융위기와 1929년 대공황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A. 2008년 위기도 규모는 컸지만 대공황 수준의 재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핵심 차이는 정책 대응이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신속하게 개입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은행을 지원했다. 1929년에는 반대로 금리를 올리고 지출을 줄였다.

Q. 대공황의 가장 큰 교훈은 무엇인가요?

A. 경제 위기 시 정부와 중앙은행의 적극적 개입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보호무역주의가 글로벌 경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 금융 시장 규제의 필요성 등이 대공황이 남긴 주요 교훈으로 꼽힌다.

공유